을씨년스럽다
“이른 아침 겨울 바람이 한층 을씨년스럽구나” , “텅 빈 거리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창문 하나 없는 을씨년스럽고 어두운 방이었다”, “어두워지는 하늘은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듯 을씨년스러웠다”
모두 을씨년스럽다는 단어가 들어간 말입니다. 내용만 봐도 을씨년스럽다가 어떤 뜻인지 느낌이 오지요?
을시년스럽다는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매우 스산하고 쓸쓸함을 말합니다. 살림살이가 가난하고 궁색한 것도 을씨년스럽다라고 표현합니다.
1905년 을사조약과 을사년스럽다.
순 우리말 같기도 한 ‘을씨년스럽다’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 을사년을 뜻하는 의미의 ‘을사(乙巳)년스럽다’에서 비롯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종 42년인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은 일본과 을사조약(乙巳條約)을 체결합니다. 일본군의 포위 속에 을사오적 중 한 명인 대한제국 외부대신 박제순과 주한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을사조약을 체결하면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일본에 박탈 당하게 됩니다.
이후 일본은 을사조약에 따라 이토 히로부미를 초대 통감으로 보내고 1910년 결국 한일합병조약으로 완전히 국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형식적으로는 경술년 1910년 국권을 상실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1905년, 을사오적의 주도로 체결된 을사조약에 의해 대한제국은 사실상 일본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장지연이 ‘시일야방송대곡’을 써서 을사오적의 매국행위를 알린 것도 이 때의 일입니다.
국립국어원에 등재된 자료 중 진갑곤 박사가 쓴 ‘한자어와 관계있는 우리말의 어원’이라는 글에서도 다음과 같이 ‘을씨년스럽다’ 가 1905년 을사년에서 비롯된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을씨년스럽다’는 1905년 우리나라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긴 을사조약(乙巳條約)에서 유래한 말이다. 을사조약으로 온 나라가 침통한 분위기에휩싸였는데 그날 이후로 몹시 어수선하고 쓸쓸한 날을 맞으면 마치 을사조약을 맺은 을사년(乙巳年)과 분위기가 같다고 해서 ‘을사년스럽다’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다. 이것이 음이 와전되어 ‘을씨년스럽다’가 되어 지금은 매우 쓸쓸한 상황 혹은 날씨나 분위기가 스산하고 쓸쓸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 진갑곤 ‘한자어와 관계있는 우리말의 어원’ 중
다만, 을씨년스럽다가 을사년에서 파생된 것은 맞으나, 1905년 이전의 글에서도 ‘을사년스럽다’는 표현을 찾을 수 있어 1905년도 을사년이 아닌 조선시대부터 쓰여진 표현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합니다. 1905년 이전 과거 을사년에도 좋지 못한 일들이 많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05년 이후로 보면 1908년 소설가 이해조가 쓴 소설 ‘빈상설’에 ‘을사년시럽다’ 라는 표현이 지금과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여기서도 정확히 을사년이 1905년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을씨년스럽다’가 언제 처음 등장한 말인지는 확신할 순 없지만 나라를 빼앗긴 1905년 을사년 이후 사람들은 더욱더 쓸쓸하고 스산한 느낌을 나라를 빼앗긴 “을사년”에 빗대어 표현하였을 듯 합니다.